"진화하는 기술유출범죄, 처벌 강화해 '패가망신' 인식 심어야"

입력 2023-07-09 13:52   수정 2023-07-09 13:56


“기술유출범죄는 경제간첩 행위나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양형기준을 높여 한 번의 범행으로도 ‘패가망신’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야 합니다.”

박진성 수원지방검찰청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수사부장(사법연수원 34기·사진)은 9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 같이 강조했다. 박 부장검사는 검찰에 손꼽히는 기술유출범죄 수사 전문가로 현대자동차 수소차 부품 제조기술 유출, 삼성전자의 자회사인 세메스의 반도체 세정장비 기술 유출 등 굵직한 사건들을 맡아왔다. 최근 산업계를 충격에 빠뜨렸던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복제시도’ 사건도 수사하고 있다. 박 부장검사가 이끄는 수사팀은 지난달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설계 노하우가 담긴 자료를 빼내 중국에 ‘복제 공장’을 지으려 했던 일당들을 재판에 넘겼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전직 임원이 주도한 이번 범행으로 최대 수조원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된다.

박 부장검사는 오랫동안 이어져온 가벼운 처벌이 이 같은 초대형 기술유출 사건이 벌어지는 데 일조했다고 봤다. 그는 “미국과 일본, 대만 등 다른 나라에선 기술유출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경제간첩, 산업스파이로 보고 상당히 무거운 형벌을 내리지만 국내에선 몇 년만 감옥생활을 하면 그만”이라며 “지금 양형기준으론 아무리 중요한 기술이 해외에 유출되더라도 길어야 징역 6년”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법원의 양형기준은 해외로 기술을 빼돌린 범죄의 형량을 기본 징역 1년~3년6개월, 가중 처벌할 경우 최장 징역 6년으로 정해두고 있다. 이렇다보니 현행법에서 규정한 형량보다 가벼운 처벌이 이뤄지고 있다. 산업기술보호법에 따르면 국가 핵심 기술을 해외로 유출한 사람은 3년 이상 징역을 받도록 돼 있다. 징역 30년형도 가능함에도 현실화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 반도체 세정장비 기술을 중국에 빼돌린 세메스 전 연구원이 지난 2월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것이 가장 무거운 처벌이다.



법정에서 가벼운 처벌이 이어지는 동안 기술유출 범죄는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박 부장검사는 “과거엔 단편적인 기술 몇가지가 유출된 정도였지만 지금은 정식채용을 가장해 영입한 전문가들을 통해 국가핵심기술을 빼내는 수법이 기승을 부린다”고 진단했다. 그는 “반도체 분야를 예로 들면 20~30년 근무한 엔지니어 한 명이 중국 반도체기업에 취업하는 순간 개별적인 기술 유출만이 아니라 유·무형의 사업 노하우까지 빠져나간다고 봐야 한다”며 “특히 임원 승진이 어렵거나 정년에 임박한 전문가들이 중국 등으로부터 계속 ‘은밀한 제안’을 끈질기게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협력업체에 접근해 기술을 빼내는 전략이 보편화하고 있는 것도 최근 눈에 띄는 변화로 꼽았다. 박 부장검사는 “협력업체들은 원청으로부터 어떤 식으로 제품 부품 등을 만들어달라는 요청과 함께 자료를 받는다”며 “원청보다 보안이 철저하진 않다보니 협력업체 수천개 중 어느 한 곳을 공략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심지어 브로커들이 거간꾼처럼 국내와 외국을 오가면서 범죄를 돕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진화한 범죄에 맞서 첨단 과학수사기법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검찰청은 지난해 9월 과학수사부에 기술유출범죄 수사지원센터를 신설하고, 일선 청에 기술유출 전담수사부서를 설치해 전문인력을 늘리는 등 기술유출범죄 수사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박 부장검사는 “기술유출 범죄는 해외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데다 범죄자들이 치밀하게 증거를 인멸하기 때문에 수사가 쉽지 않다”며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복제 시도사건도 범행을 주도한 피의자가 국내에 들어왔을 때 곧바로 출국금지 조치와 압수수색을 하지 않았다면 각종 물증과 진술 확보가 어려웠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범죄로 벌어들인 돈을 증거 은폐와 방어권 행사에 적극 쓰는 기술유출 범죄자들을 제대로 엄단하기 위해선 최첨단 포렌식기술 등을 동원한 과학수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범죄수익 환수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부장검사는 “강한 처벌과 함께 범죄수익을 모조리 환수해야 범행 동력이 사라지는데 현재 법원은 ‘피해금액 산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몰수나 추징에 소극적”이라며 “최소한 기술을 도둑맞은 기업의 연구개발비만이라도 피해금액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김진성/권용훈 기자 jskim102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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